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린든 B. 존슨 (문단 편집) === 내치와 경제의 명암 === 외치와 경제에서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고 있지만, 그나마 내치에서는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현대자유주의|자유주의]](내지 진보) 진영,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복지 등 그의 사회 정책에 매우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반면 보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결국 전쟁과 복지 퍼주기를 위한 달러 찍어내기가 하술된 재정 문제와 나아가 70년대를 관통하는 세계적 경제 위기를 야기했고, 미국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받는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 행정부는 미국의 빈곤에 대해 무조건의 선전포고를 하겠습니다." >---- >1965년 3월 15일 존슨의 연설. [[http://www.youtube.com/watch?v=qfT03Ihtlds|연설영상]], [[http://uspolitics.about.com/od/speeches/a/lbj_1965_15_mar.htm|연설문]]. 존슨은 소위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 정책과 '가난과의 전쟁(War on Poverty)'을 선포하며, 연방정부의 공립학교(초, 중학교)에 대한 대대적 재정지원 정책[* 여담으로 특수학교에도 더 큰 투자를 하도록 하였다.]과 미국 [[환경]] 보호 정책의 기틀을 만들었다. 또 현재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메디케어(Medicare; 65세 이상의 미국인에게 제공되는 의료보험)와 메디케이드(Medicaid;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극빈층[* 정확히는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극빈층.]에게 제공되는 의료보험) 역시 모두 존슨 행정부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는 미 정부의 재정지출의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미 정부 재정적자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의료비가 원체 비싸지다 보니...게다가 의료비가 너무 올라서 재정 부담이 크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즉 정부에게나 개개인에게나 모두 부담이 큰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수혜자를 줄이기도 어렵다. 이렇게 된 것은 미국의 의료체계가 영리병원과 대기업 보험회사 위주로 되어있는 것이 가장 크다. 사기업의 특성상 최대한 많은 이윤을 짜내야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의 재정지출을 이기지 못하고 닉슨이 의료보험을 국영화하지 못한 것이 21세기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 OECD 국가들의 의료비 지출은 GDP 대비 평균 9%, 한국은 7% 수준인데 비해 미국은 무려 15%나 된다. 그래서 클린턴, 오바마 모두 의료보험 대개혁을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당선됐지만, 결국 기득권 세력의 극렬한 반대로 실패하고 만다.] Tax-cut bill of 1964으로 경제 성장 촉진 및 기업 투자 증가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으며, Economic Opportunity Act of of 1964로 직업 프로그램 지원, VISTA 자원봉사 프로그램, Head Start Project 등을 시작했다. 흑인에 대한 법적인 평등이 보장된 것도 그의 손에 의한 것이었으며, [[흑인민권운동]]에서 촉발된 1964년 [[민권법]] 제정은 그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이다. 케네디 때 못이룬 민권법 통과를 그는 지지층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밀어붙였는데, 이 법이 통과된 후 존슨은 측근에게 "잘 한 일이야. 하지만 이로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남부는 공화당이 지배하겠군."이라는 씁쓸한 말도 남겼다고 한다.[* LBJ가 남부의 상징인 [[텍사스]]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기 고향을 공화당에 넘겨줄 것까지 각오하고 민권법을 밀어붙였다고 이야기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 이때부터 기존 민주당의 텃밭이던 남부가 공화당의 텃밭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말도 있는데 거짓이다.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카터 대통령의 첫 번째 선거를 제외하고는 민주당에서 남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80년대까지도 주지사와 하원 의원, 상원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남부에서 계속 우세를 점했다. 민권법 이후로 민주당이 남부에서의 지지를 잃어버렸다는 설은 바이블 벨트로 대표되는 미국 남부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현 상황과 대통령 선거 결과들만 보고 말하는 단견에 불과하다. 민권법 이후로도 'Solid South'는 수십 년 동안 굳건했다.] 그 밖에도 1965년 이민 및 국적법으로 비유럽인들이 미국에 더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인간의 달 착륙을 성공시킨 [[아폴로 계획]]도 존슨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실현시켰다.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다소 무모한 선언은 케네디 암살 이후 동력을 잃고 흔들릴 뻔했으나, 존슨 대통령은 아폴로 계획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계속했다.[* 케네디의 발언은 나사 직원들한테 용기를 줬으나, 기본적으로 '''[[공밀레]]'''였다. 존슨이 "그냥 하지 맙시다." 한마디만 하면 끝이었다. 1968년 유인우주선이 달을 순회하는데 성공하자 “여러분들은... 우리 모두를, 전세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안내했습니다."라고 말을 못 잇기도 했다고. 하지만 최초의 달 착륙의 영광은 다음 대인 닉슨 때로 넘어간다.] 덕분에 케네디 재임기간에는 상당히 불확실하고 무모한 계획에 불과했던 아폴로 계획이 존슨의 재임기간 동안 구체화되었다. 즉, [[냉전]]기 우주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계속 뒤처졌던 미국은 존슨 재임기 중반에 실시된 [[제미니 계획]]을 통해 비로소 소련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존슨 대통령은 [[아폴로 11호]]가 성공하기 반년전에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닐 암스트롱에게 축하해준 대통령은 후임인 [[리처드 닉슨]]이었다. 물론 후임 닉슨 대통령은 존슨의 정책을 상당부분 뒤집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는 그대로 남아서 계속 미국의 재정을 좀 먹었다. 존슨 대통령의 국내 정책에 대해 호평만 있는건 아니라, 미국의 본격적 복지 프로그램인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의 재정 투입 대비 효율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정책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하는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그로 인해 70년대에 들어서면 정책 집행과 정책 평가 분야가 크게 각광받게 되었다.[* 문제는 이때도 정치적으로 피드백을 받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 존슨 정부는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그의 대외 정책(베트남 전쟁)과 위대한 사회를 위한 복지 정책 및 우주 개발 등에 필요한 과도한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존슨 정부는 달러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찍어냈다. 이러한 유래없는 과도한 재정팽창 정책에도 불구하고 금태환제/고정환율제와 기축 통화국의 지위 덕분에 60년대 미국은 오히려 호황을 맞이하는 혜택을 누렸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다른 나라들, 특히 서유럽이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되었다. 이에 피해에 열받은 [[샤를 드 골]]이 미국을 대놓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를 드러내지 못했다. 존슨 정부의 과도한 통화팽창 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달러에 대한 위기는 마침내 닉슨 정부 초기에 터지고 말았고, 80년대 초까지 후유증이 이어졌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서독]]이 [[브레튼우즈 체제]] 탈퇴를 선언하자 세계 각국 정부는 패닉에 빠졌고 미국에 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쳤다. 결국 내줄 금이 없었던 닉슨 정부는 금태환 중지를 선언했고,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진 셈이다. 물론 일각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가 붕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70년대 미국은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중동의 독재자들과 검은 거래를 해야했고, 이러한 [[페트로 달러]]는 정의로운 국가 미국의 이미지를 구기게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급격한 달러 평가 절하로 서방과 중동 각국의 피해는 막심했고 각국에서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산유국들의 피해는 막심했다. 결국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표면적으로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미 이전에서 3차례나 터졌던 중동전쟁에서 멀쩡했던 석유 값을 4차 중동전쟁 때 갑자기 폭등시킨 것은 두가지 원인이었다. 중동 국가들이 달러 가치 폭락으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한 목적에 더해, 달러 평가절하를 야기시킨 미국에 대한 분노가 내재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 2차 오일쇼크의 발생은 미국 경제에 엄청난 데미지를 주었다. 달러 찍어내기 덕분에 존슨 시절 미국은 호황을 누렸고, 덕분에 존슨의 지지율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를 대신 감당해야 했던 유럽은 경기 침체, 실업율 증가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이는 유럽에서 [[68 혁명]]이 발생하게 된 한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닉슨의 시대에 이르러 금태환 중단을 선언해야 했고, 덕분에 닉슨은 전세계로부터 오지게 욕을 쳐먹어야 했다. 사실 그 욕은 존슨이 먹는게 더 합당했다.[* 그리고 이후 미국은 달러가치를 보증할 수 없는 그 상태로 수십년이 흘러갔고, 마침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상화폐의 대두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루나코인]]이나 [[도지코인]] 폭락사태 등으로 인해 가상화폐의 신뢰도 자체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기존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재정 정책은 비대한 정부를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득세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에는 공화당 정권 뿐만 아니라 [[빌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 역시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소위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80년대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도 만만치 않는다는 반론이 있다. 다만 존슨 정부의 재정 팽창 정책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는 역반론도 많다. 존슨 정부의 재정 적자가 겉으로 보기에 크지 않은 것은 '''순전히 달러를 그냥 마구 찍어냈기 때문이다.''' 반면 훗날의 레이건 정부는 그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이라면 경기를 일으킨 정부였기 때문에 팽창 재정을 실시하지 않았고, 고스란히 재정 적자로 이어졌던 것이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존슨 정부의 미친 수준의 재정 팽창 정책의 여파로 인한 피해는 후임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정권 초기까지 직접적으로 이어졌다. 한편 린든 존슨은 거물 정치인이었던 만큼 만큼 [[정경유착]] 의혹도 받았는데, [[조지 W. 부시]]의 부통령 [[딕 체니]]에 이르기까지 정경 유착으로 악명높았던 핼리 버튼이 급성장한 시기가 이시기 쯤부터라 그렇다. 핼리 버튼의 건설 엔지니어링 분야 자회사인 ‘브라운 앤드 루트(Brown & Root)’는 1962년 핼리 버튼에 합병되었는데, 이 브라운 앤 루트가 존슨의 정치 캠페인을 전적으로 밀어주는 대가로 독점적인 관급공사 계약, 즉 베트남전 동안 미군이 발주한 인프라 공사의 85%를 차지했다. 이는 당시 참여한 4대 컨소시엄 가운데 압도적인 몫으로 반전 시위자들의 조롱감이 되었으며 참전 군인들도 브라운 앤 루트를 '번 앤드 루트(Burn & Loot)', 그러니까 방화하고 노략질하는 기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